|
|
|
|
 |
|
|
|
|
 |
연의역사 |
▶
동양연의 기록 |
|
|
|
동양에 있어서는 중국 한대(漢代)에 한신(韓信)이 만들었다는 기록고 있다. 송(宋)나라
고승(高丞)의 ≪사물기원(事物記原)≫에 기록되어 있다.
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해 오기를, 이것은 한신(韓信)이가 만든 것이라 한다. 고조(高祖)가
진희(陳희)를 칠 때 한신이 중간에서
반란을 일으키기 위하여 지연(紙鳶-종이연)을 만들어 띄워서 미앙궁(未央宮)의 멀고 가까운
거리를 측량한 뒤 땅을 뚫고 궁중으로 들어가지고 하였다. 대개 예전부터 이같이 전하여
내려온 것이므로 사유가 그럴 듯하다. 또 양(梁)나라 대청년간(大淸年間)에 후경(候景)이
대성(臺城)을 치매 내외 소식이 끊어지므로 양축(羊)
이 아이를 시켜 지연을 만들어 조서를 가운데 매고 대제(大帝)가 태극전(太極殿) 앞에서
북풍에 따라 날리어 구권군 있는 곳에 닿기를 바랐더니 적이 이것을 압승하는 술법이라 하여
쏘아 떨어뜨렸다. 이런 사실은 ≪마총통력(馬摠通曆))에 실려 있다 한다. 그러나 그 시초된
것을 여기서 볼 것 같으면 한신(韓信)이 만들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.
그리하여 한신을 연 만든 시조로 보고 있다.
한신은 중국 한(漢) 고조(高祖-유방(劉邦))의 공신으로 승상 숙하에게 발탁되어 장재(將才)를
발휘하고 대장군에까지 올랐다. B. C. 250년에 유방의 통일대업을 도와서 연(燕)
· 제(齊) · 조(趙)를 차례로 명망시키고 대공으로 초왕(楚王)에 봉함을 받았던 사람이다.
이 설의 진위 또한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 한신은 한(漢) 고조(高祖-유방(劉邦)) 때
사람이므로 동양에 있어서의 연은 2,200년 전에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.
이 연은 양대(梁代)에도 있었다는 것은 앞에 든 기록에서도 보았다. 양의 《고조기(高祖記)》에도
그 명칭이 나타나므로 육조시대(六朝時代)에는 연날리기가 성행했던 것 같다. 존선조 선조
때 이졸광(李 光)의 《지봉류설(芝峰類說)》에도
소설(小說)에 말하기를, 양(梁) 무제(武帝)가 대성(臺城)에 있을 적에 어린아이가 계책을
썼다. 이 어린아이는 종이로 연을 만들어 소서( 書)를 매어 바람에 날려 밖에서 구원해
주기를 구하였다. 이제 우리 나라 어린아이들이 설날에 한지로 연을 만들어 연을 날리기를
한다. 또 고찰 하건대 당(唐)나라 노덕연(路德延)의 아잇적 시(詩)에 말하기를 실을
늘여 지연을 날린다 하였으니 그 유래가 또한 오래되었다.
이 기록을 볼 때, 당대(唐代)에도 연을 날렸음을 알 수 있다. 당(唐)의 이석선인 속박물지《續博物志》에
"이제 종이연이 실을 끌고 올라가면 아이로 하여금 입을 벌리고 바라보게 하여
열기(熱氣)를 조절하게 함이라." 고 하였다. 이것을 보면 당대(唐代)에 와서는
연날리기가 더욱 성행 한 것 같이 보인다.
▶ 참 고 문 헌 ◀ 최상수 「한국
민속놀이의 연구」. <성문각> 1988. pp. 58
|
|
|
|
|
|
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