"전통연"과
"방패연"은 아래와 같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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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|
1991년 1월 30일
4쇄 발행된 "동아 새국어사전(國語辭典)"(주)동아출판사, 동아국어사전연구회(주간
김사영)감수 서울대학교 이기문교수(학술원 회원)는 "방패-연(防牌鳶)"을
명사 "복판에 구멍이 없는, 네모 반듯한
연"이라고 편찬되었습니다(829쪽)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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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. |
1996년 1월 10일
3쇄 발행된 "동아 새국어사전(탁상판 가죽표지)"(주)동아출판사, 동아출판사
편집국(권태명) 감수 문학박사 이기문교수는 "방패-연(防牌鳶)"을
명사 "복판에 구멍이 없는, 네모 반듯한
연"이라고
편찬되었습니다(893쪽)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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3. |
. 2000년 2월 25일
밀레니엄 새로만든 국어대사전(가죽양장본) 민중서관(발행인 정운길) , 감수 국어국문학회에서는
"방패-연(防牌鳶)"을
명사 "복판에 구멍이 없는, 네모 반듯한
연"이라고 편찬되었습니다(1031쪽).
이외에 교보문고와 영풍문고, 종로서적에서
확인한 약 20여종의 "국어사전"에서도
"방패-연(防牌鳶)"에
대한 뜻을 상기와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.
더욱 1950년대의 민속학자인 "최상수"교수가
"학술지"를 발표한 사실이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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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. |
단기 4291년 12월
20일 발행된 한국민속학연구총서 "한국
지연의 연구"한국민속학회 회장 최상수교수가
이 학술지 59쪽에서도 "방패연(Bang-pae-yon)(shield
kite)"을 "방패처럼
구멍이 없는 연"으로 정의되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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5. |
서울특별시 후원 2000년도
문화행사인 2000년 9월 29일~10월 3일 세종문화회관 갤러리에서 전시된 동덕여대미술대학장
이양원교수, 용인대학교 강병돈교수, 계명대학교 김양돈교수 외 많은 교수들과 작가 그리고
전통연 전문가들의 작품 전시회인 "이순신장군 신호연 및 현대작가 50인의 전통연
전시회"에서도 나타나 있었음은 물론 고건 서울특별시장께서 우리 나라의 연을
"방패연"이 아닌
"전통연"으로 전시회에서 축사한 사실이 있습니다.
"이순신장군 신호연 및 현대작가 50인의
전통연 전시회"에 발행한 도록(圖錄)에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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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. |
일본연이
주로 방패연입니다.
세계의 연란 일본연에 들어가 보시면 다양하고 화려한 방패연을 보실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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7. |
참고로 한국연은 A.
D 647년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.
일본연의 기록은 한국연보다 약 283년 후인 A. D. 930년대에 원순(源順)의 저(著)인《왜명류취초(倭名類聚抄)》잡예부(雜藝部)에
지노치(紙老? : (註)늙은 올빼미연)는 색칠을 하여 만든 것이므로 지노치(紙老?)는
세간에서는 사노지(師勞之)라고 한다.
종이를 솔개 형상과 같이 만들어 바람을 타 날리는 것이니 일설에는 지연(紙鳶)이라고도
한다.
이것으로 미루어 A. D. 930년대에 일본에도 이미 지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.
A. D. 1168년 이후에 된 것이라고 전하는 B. 귤충겸(橘忠兼)의 이여파자류초(伊呂波字類抄)나
A. D. 1241년에 관원시선(菅原是善)의 《유취명의초(類聚名義抄)》에 나타난 명칭으로
미루어 보면, 그 당시 일본의 연은 올빼미 형상(梟形)을 한 것이었고, 또 「시로시」라고
음독(音讀)되었음을 알 수 있다.
그리고 일본 민간에는 연을 전쟁 때에 이용하고 또 건축할 때 연을 이용하여 벽돌을 쉽게
올렸다는 속설도 있음을 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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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. |
상세한 것은 "최상수"교수의
"한국 지연의 연구" 제1장
"한국 지연의 기원" 3~4쪽에 명시되어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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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. |
"한국의 전통연"은
"액을 멀리 보내고 복을 주는(送厄迎福) 행운(幸運)"의
의미도 있습니다. 연을 직접 만들어 걸어 두면 좋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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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0. |
10. 아름다운 전통연은
지금도 하늘에 떠있습니다.
연을 날립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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